막오른 AI 경쟁 2라운드 … 韓, 피지컬 AI 위한 현장 데이터 축적을 [기고]
AI 경쟁 2막의 병목은 컴퓨팅이 아니라 현장 데이터라고 짚었습니다. 제조 로봇 밀도 세계 1위인 한국은 유리한 출발선에 섰지만, 현장이라는 원석을 자산으로 바꾸는 변환 공정과 기업·작업자가 참여할 유인을 함께 갖춰야 2막에서 승부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돈의 흐름이 말해준다. 골드만삭스가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전망치를 2035년 380억달러로 여섯 배 이상 올린 데 이어, 모건스탠리는 2050년 5조달러 시장과 10억대에 이르는 휴머노이드 보급을 내다봤다. 인공지능(AI) 발전 속도가 예상을 앞질렀다는 것이 공통된 이유다. 국내도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한국형 AI 휴머노이드 플랫폼 확보에 2030년까지 504억원을 투입하는 사업에 착수했고, 민관 합동으로 1조원 규모의 휴머노이드 투자도 추진되고 있다.
지난 몇 년의 AI 경쟁 1막을 돌아보면 규칙은 자본과 컴퓨팅의 규모였다. 우리는 불리한 규칙 위에서 싸웠다. 2막의 규칙은 다르다. 초거대언어모델은 인터넷에 쌓인 텍스트를 학습해 만들어졌지만, 로봇이 배워야 할 공간의 구조, 사물의 성질, 사람의 행동은 인터넷에 없다. 공장, 물류센터, 조선소 등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야 한다. 1막의 병목이 컴퓨팅이었다면 2막의 병목은 현장의 데이터다.
여기서 한국의 조건을 보자. 국제로봇연맹(IFR)의 '월드 로보틱스 2025'에 따르면 한국의 제조업 로봇 밀도는 직원 1만명당 1220대로 세계 1위다. 2위 싱가포르(818대)와의 격차가 크고, 세계 평균(132대)의 아홉 배가 넘는다. 반도체·자동차·조선의 제조업 기반에 물류·국방까지, 피지컬 AI가 배워야 할 현장을 이만큼 밀도 있게 갖춘 나라는 드물다.
물론 현장이 있다는 것과 데이터가 있다는 것은 다르다. 공장의 로봇은 매일 움직이지만 그 기록은 대개 장비와 현장 안에 갇혀 있고, AI가 학습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다. 현장이라는 원석과 데이터라는 자산 사이에는 별도의 변환 공정이 필요하다. 필자의 회사는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 참여해 이 공정을 구축해왔다. 한국 가정 환경 50곳을 촬영한 100만프레임 이상의 실환경 데이터를 3차원 공간과 사람 행동 데이터로 변환하고 이를 가상 환경에 옮겨 학습 데이터를 대량 생성하는 방식이다.
이 경험에서 얻은 확신은 피지컬 AI 데이터가 일회성 소모품이 아니라 축적되는 인프라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프라의 속성상, 먼저 축적을 시작한 쪽과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다. 중국은 정부 지원으로 이미 40곳이 넘는 로봇 훈련센터를 세웠고, 올해는 훈련장의 전국 단위 배치를 5개년 계획에 명문화했다.
정부 방향은 잡혀 있다.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K휴머노이드 연합을 확대 개편한 휴머노이드 M.AX 얼라이언스, 권역별 행동데이터 훈련장과 데이터 팩토리 구상까지, 판은 깔렸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세 가지 제도적 보완이다.
첫째, 데이터 구축 사업의 다년도화다. 데이터 축적은 본질적으로 여러 해에 걸친 일인데, 단년도 과제 구조는 매년 파이프라인을 세웠다 허무는 낭비를 만든다. 둘째, 공공 재원으로 구축된 데이터의 개방과 상업적 활용 규정 정비다. 만들어진 고품질 데이터가 과제 서랍이 아니라 국내 로봇·AI 기업들의 학습 현장으로 흘러야 생태계의 총합이 커진다. 셋째, 품질과 신뢰의 기준이다. 올해 시행된 AI 기본법이 규제가 아닌 신뢰의 기반이 되려면, 피지컬 AI 데이터의 품질 인증과 개인정보 처리 기준을 산업 성장과 함께 설계해야 한다.
다만 제도가 갖춰져도 데이터가 저절로 모이지는 않는다. 마지막 조각은 현장의 참여다. 피지컬 AI 데이터의 원천은 기업의 설비와 공간, 작업자의 몸에 밴 암묵지다. 현장 입장에서 이것은 '나를 대체할지도 모를 기술을 위해 내 노하우를 내놓으라'는 요구로 들릴 수 있다. 정당한 질문이고, 정면으로 답해야 한다. 데이터를 제공한 기업에는 성과 모델의 우선 활용권과 수익 배분이, 숙련을 데이터로 남긴 작업자에게는 기여에 대한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를 사업 설계 단계부터 넣어야 한다. 참여가 손해가 아니라 지분이 될 때 현장은 문을 연다. 이번 경쟁에서 한국은 오랜만에 유리한 출발선에 선 참가자다. 현장이라는 원석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 이 원석을 자산으로 바꾸는 공정과 현장이 기꺼이 참여할 이유, 두 가지를 갖추는 속도가 2막의 성적표를 결정할 것이다.
[김현수 슈퍼브에이아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