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한민국 '피지컬 AI 주권'의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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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의 무대가 거대언어모델(LLM)을 넘어 물리적 세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엔비디아의 투자를 받은 피규어AI는 올 2월, 인간의 말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로봇 영상을 공개했다. 인간이 로봇에게 물건들을 정리해 달라고 하자, 로봇들이 알아서 냉장고에 계란과 케첩을 넣고 실온에 보관해야 할 밀가루는 트레이에 놓는 등 식재료의 보관 특징을 알아서 구분해 정리한다. '피지컬 AI', 즉 현실 세계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인공지능(AI) 로봇 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대한민국은 피지컬 AI를 선도할 강력한 잠재력이 있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의 제조업 경쟁력 지수(CIP)에서 최근 10년간 세계 5위권 내의 위상을 지키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인프라와 기술력은 풍부하고 질 높은 '산업 현장의 실제 데이터'를 직접 취득할 수 있는 독보적 환경을 갖췄다. 이제 이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로봇을 움직일 수 있는 핵심 소프트웨어(SW)에 대한 국가적 비전이 필요하다.
피지컬 AI를 단순히 공장의 로봇 팔처럼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기계로 여겨서는 안 된다. 진정한 의미의 피지컬 AI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가득한 '오픈월드'에서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적응하며 임무를 완수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대한민국 제조업의 가장 큰 자산이기도 한, 숙련된 근로자들의 '암묵지(Tacit Knowledge)'를 AI 기술로 구현하는 것과 같다. 수십년간 현장에서 쌓아온 노하우는 정해진 매뉴얼이 아닌, 미묘한 상황 변화에 대처하는 적응 능력에 있다. 이를 데이터로 전환해 어떤 로봇이든, 어떤 환경에서든 활용 가능한 범용 '행동 지능'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환경과 사물을 이해하는 로봇'은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핵심 기술의 유기적 융합이 필수다. 첫째는 LLM 기반으로 인간의 의도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언어 능력'이다. 둘째는 영상 AI를 기반으로 물리적 세계를 정밀하게 인지하고 이해하는 '시각적 지각 능력'이다. 마지막으로, 피지컬 AI 기반으로 물리적 세계에서 실제 업무를 정교하게 수행하는 '운동 제어 능력'이다.
이 중에서도 현실 세계의 복잡성과 돌발 변수를 이해하는 '시각 지능'은 AI의 '눈'으로서, 인간의 언어와 로봇의 행동을 연결하는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다. 많은 이들이 비전 AI를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나 단순 불량 검수 기술처럼 오래된 분야로 오해하지만, 단답형 챗봇이 '챗GPT'로 달라진 것처럼 영상 AI 분야도 엄청난 기술적 혁신이 진행 중이다.
대한민국이 AI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 AI 전략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AI 반도체, LLM뿐만 아니라 비전 AI 영역도 함께 육성해야 제조강국의 강점을 살리는 피지컬 AI를 선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두 가지를 제언한다. 첫째, 기업들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취득한 고품질 데이터를 출자하면, 국가가 데이터를 관리 및 개방해 생태계를 확장하고, 산업용 AI를 수요 기업들이 바우처를 통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정부가 먼저 적극적으로 산업 AI 솔루션의 고객이 돼줘야 한다. 연구개발(R&D) 지원을 넘어, 공공기관에서 적극적으로 활용 사례를 만들어 줘야 피지컬 AI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숙련공들이 가진 위대한 '손의 지식'을 AI의 '눈과 뇌'에 이식할 때, 대한민국은 세계 피지컬 AI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산업 기반 위에 비전 AI 기술을 전략적으로 꽃피우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따라잡는 것이 아닌, 앞서나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