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회사가 AI 쓸 수 있게... 美 듀크대 수석졸업한 청년의 도전
슈퍼브에이아이는 'AI를 위한' AI 스타트업으로 불립니다. 기업들이 AI를 도입할 수 있도록 돕는 AI 플랫폼을 내놨습니다. 회사는 설립 초기 세계 최대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로부터 투자를 받기도 했습니다. 누적 투자액은 300억원이 넘는데요. 이 회사는 미국 명문 듀크대를 수석졸업한 1990년생 한국 청년이 2018년 창업했습니다. 김현수 슈퍼브에이아이 대표를 한경 긱스(Geeks)가 만났습니다.
"인공지능(AI)을 도입하고 싶은데, 몰라서, 어려워서, 개발자가 없어서 시도조차 못하는 회사들이 많습니다. 그나마 정보기술(IT) 회사들은 덜하지만, 제조업 같은 전통산업 분야 회사들은 더 막막할 걸요. 모든 회사들이 AI를 쓸 수 있게 만들 겁니다."
한경 긱스(Geeks)와 만난 김현수 슈퍼브에이아이 대표(사진)에게는 늘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우선 미국 명문 듀크대 전자공학과와 생명공학과를 수석졸업했다. 2020년 포브스 선정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 30인'에 뽑혔다. 이듬해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최연소 민간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AI의 '비효율' 고치고 싶었던 청년
1990년생으로 '엄친아' 소리를 듣던 김 대표는 스스로를 '뼛속까지 공대생'이라고 평가했다. 어린 시절 꿈은 과학자였고, 대학교에 들어간 뒤엔 연구원이 되고 싶었다. 졸업할 때 즈음이던 2015~2016년엔 한창 AI가 '핫'한 키워드로 떠오를 때였다. 곧장 대학원에 진학해 컴퓨터공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1년 정도 공부해보니, 단순 연구 말고 AI를 실제 산업에 접목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대학원을 중퇴하고 한국으로 날아왔다.
2016년 한창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대결'로 떠들썩할 시기, SK텔레콤에서 스카웃 제안이 왔다. SKT 내 선행 연구조직에서 자율주행, 챗봇, 게임 등 '제 2의 알파고'가 활약할 수 있는 분야를 파고 또 팠다.
쉬운 게 하나 없었다. 게임 AI를 연구할 땐, '스타크래프트'에 쓸 수 있는 AI를 개발하기 위해 매달렸다. 늘 그렇듯 AI에서 가장 중요한 건 데이터였다. 게임을 잘 하는 유저의 영상을 확보해 학습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그런데 데이터를 모으는 것부터가 너무나 힘들었다. 김 대표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의 리플레이 영상을 받기 위해 당시 온게임넷에 전화를 돌려봤지만 너무 오래 돼 구할 수 없었다"며 "어찌저찌 겨우 구한 영상을 갖고 연구원끼리 다시 플레이를 해 가며 또 라벨링을 해야 하는데, 하세월이 걸리곤 했다"고 회상했다.
자율주행을 연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외주업체를 통해 받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은 그야말로 '쓸모가 없는' 데이터가 대부분이었다. 라벨링도 틀린 경우가 많아 일일이 오류를 바로잡는 데만 몇 개월이 소요됐다.
일단 만들어 산업에 적용시키면 인간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게 AI였지만, 그 과정까지가 너무나 멀고 험난했다. 비효율의 극치였다. 김 대표는 오히려 이 지점에서 사업의 가능성을 봤다. 기업들이 AI를 보다 더 쉽고 편리하게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를 내놓고 싶었다. 같이 일하던 동료 4명과 의기투합해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슈퍼브에이아이다.
라벨링부터 앱 개발까지... '올인원' 노려
슈퍼브에이아이의 플랫폼은 크게 네 가지로 구성된다. 각각 슈퍼브 라벨, 슈퍼브 큐레이트, 슈퍼브 모델, 슈퍼브 앱스이다. AI 서비스를 만들 때 순차적으로 필요한 과정으로 구성됐다. 김 대표는 "AI를 개발할 때 하나 하나 거쳐가야 하는 과정들을 떠올리며 이걸 해결하는 서비스를 개발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회사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먼저 내놓은 건 슈퍼브 라벨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데이터 라벨링을 도와주는 플랫폼이다. 라벨링은 흔히 '인형 눈알 붙이기'에 비유된다. AI가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데이터를 가공하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특정 사진이나 영상이 '강아지'인지 '고양이'인지 라벨을 붙이면 AI가 이를 학습한 뒤 비슷한 사진과 영상을 보고 구분하는 식이다. 라벨링을 거쳐야만 AI 딥러닝이 가능해진다.
이 작업은 중요하지만 비효율적인 과정이었다.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라벨을 붙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데이터 라벨링 '알바' 구인글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이걸 자동화한 게 슈퍼브 라벨이다. 사람이 하는 라벨링보다 최대 10배 빠르다. 클릭 한 번으로 별도의 모델 학습 없이 자동으로 객체를 구별하고, 자동으로 사진이나 영상에 이를 설명해주는 자막을 생성하는 기능도 탑재됐다.
슈퍼브 큐레이트는 라벨링되기 전후의 데이터를 선별해주는 역할을 한다. 어떤 데이터가 유의미한지, 혹은 의미 없는 '정크 데이터'인지 AI가 판단해준다. AI 모델이 가장 필요로 하는 데이터만을 자동으로 모아주고, 시각적인 유사성을 바탕으로 클러스터화 된 데이터의 분포도를 시각화해주기도 한다. 최근엔 이미지를 판독·식별하고 인식할 수 있는 비전 AI 모델의 성능을 진단하고, 오류 유형을 파악하는 서비스를 내놨다. 김 대표는 "수천만 건의 데이터 중에서 유용한 것들만 쏙쏙 골라내 작업 효율성을 높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터를 라벨링하고 난 뒤엔 슈퍼브 모델과 슈퍼브 앱스를 활용할 수 있다. 코딩이 필요없이 모델을 학습시키고 배포해 서비스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슈퍼브 스를 활용해 실제 사업에 적용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회사는 이런 플랫폼을 B2B SaaS 방식으로 기업 고객사에 공급한다. 고객사는 네 가지 플랫폼을 입맛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정말 AI 도입이 막막한 기업들을 위해서 우리가 직접 플랫폼을 활용해서 AI 서비스를 만들어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350억 투자 유치... "AI는 아기 같은 존재"
김 대표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 플랫폼을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유통업체 A사가 오프라인 '라면' 판매량을 높이기 위한 AI 모델을 기획 중이라면, 우선 마트나 슈퍼마켓 진열대에 자사 제품이 몇 개나 올라와 있는지 진열대 사진을 찍어 조사해야 합니다. 슈퍼브 라벨을 활용하면 라벨링 과정을 효율화할 수 있죠. 이를테면 100개의 제품 중에 10개 정도만 클릭해 라벨링해주면, 이후 과정은 AI가 알아서 제품을 인식해 라벨을 붙여주는 겁니다.
라벨링을 마치고 보니 대형마트 사진만 있고 편의점 사진은 없네요? 그렇다면 편의점 제품의 인식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이 때 슈퍼브 큐레이트가 데이터 분포를 보여주며, '편의점 사진이 더 필요하다'는 걸 알려줍니다. 또 흔들렸거나 어두운 사진이 있으면 걸러내야 한다고 알려주기도 하죠.
이어 슈퍼브 모델을 활용해 AI 모델을 만듭니다. 짧게는 반나절 만에 AI 모델이 완성되죠. 라면 B에 대한 인식률이 95%, 라면 C에 대한 인식률이 90% 등 성능에 관한 정보를 보여줍니다. 보완할 부분을 확인한 뒤 데이터를 다시 모으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 개선된 AI 모델이 나오죠. 이후 슈퍼브 앱스를 이용해 제품을 완성하는 거예요. 진열대를 찍으면, AI가 라면 B가 몇 %, C가 몇% 있는지 분석해주는 '진짜' 서비스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회사는 이런 서비스를 바탕으로 농업,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물류, 의료, 방산, 자율주행, 로봇 등 다양한 분야 고객사를 확보했다. 예를 들어 스포츠 데이터 분석 업체는 슈퍼브에이아이 플랫폼을 활용해 프로농구 경기에서 선수들의 움직임 패턴과 플레이 유형을 분류한 데이터를 만들었다. 또 애그테크 업체는 슈퍼브 라벨의 커스텀 오토 라벨 기능을 활용해 토마토나 파프리카 같은 농산물의 9만 개 데이터를 라벨링했다.
회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슈퍼브에이아이 플랫폼으로 AI 모델을 만든 사례는 2700건에 달한다. 설립 초기 와이콤비네이터를 시작으로 프리미어파트너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스톤브릿지벤처스 등 유명 투자자로부터 누적 350억원 이상의 투자도 유치했다. KT와 한국경제신문이 주관한 '코리아 AI 스타트업 100'에는 3년 연속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제 김 대표는 모든 기업들이 AI를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AI는 도입만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새로운 데이터를 공급해주며 끊임없이 키워나가야 하는 '아기' 같은 존재"라며 "AI를 접해보고 '잘 안되네'라고 생각하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키울 생각을 하시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