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아의 MZ라이프]실리콘밸리 대신 택한 韓 스타트업…"AI 가능성 봤다"

[유진아의 MZ라이프]실리콘밸리 대신 택한 韓 스타트업…"AI 가능성 봤다"
김민철 슈퍼브에이아이 PO 인터뷰

"개발자 출신 프로덕트오너(PO)라서 그런지 이유가 납득되지 않으면 손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팀원에게 설명할 때도, 기획안을 세울 때도 '왜'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죠. 제품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그 이유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민철(사진) 슈퍼브에이아이 PO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항상 일의 시작을 '이유'에서 찾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에게 제품 기획은 '무엇'보다 '왜'를 먼저 고민하는 데서 출발한다.



◇질문·토론이 성장 밑거름

김 PO가 PO 직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맥락'이다. 단순히 기능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게 왜 필요한지, 누가 어떻게 쓰는지까지 끝까지 설계하는 데 집중한다. 기획이란 결국 수많은 맥락과 사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김 PO의 사고방식은 그의 성장환경에서 비롯됐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현지 교육을 받으며 자란 그는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질문과 토론 중심의 자유로운 수업을 경험했다. 그는 "미국 학교에선 질문하는 게 당연했다. 서로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했고 궁금한 건 망설이지 않고 바로 물었다"며 "그런 환경이 사고방식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회상했다.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습관'은 듀크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진학해서도 이어졌다. 이론보다 실전에 가까운 수업 방식 속에 문제를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받았다. 특히 학제 간 교류와 팀 프로젝트가 원활한 환경은 다양한 직무와 협업하는 PO 업무의 밑거름이 됐다. 김 PO는 "듀크대에서 가장 크게 배운 건 기술 그 자체보다 복잡한 문제를 구조적으로 풀어가는 방법"이라며 "추상적인 개념을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해결했던 경험이 지금 하는 일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졸업 후 그는 실리콘밸리에 있는 링크드인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체계적인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시스템 안에서 일하며 제품이 만들어지는 흐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했다. 이후 창업 초기의 스타트업 엑스포넌트에 세 번째 멤버로 합류했다. 마케팅부터 개발, 고객 응대까지 전방위 업무를 직접 해내며 실전 감각을 키웠다.

실리콘밸리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김 PO는 2022년 한국으로 돌아와 슈퍼브에이아이에 합류했다. AI 기술의 가능성과 제품 중심 조직 문화에 끌렸기 때문이다. 슈퍼브에이아이는 머신러닝 개발을 위한 데이터 관리, 라벨링, 분석을 돕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AI기업이다.

김 PO는 현재 제품의 방향을 설계하고 팀을 연결하며 고객의 언어를 기술 언어로 바꾸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AI는 데이터에서 시작되고 끝난다"며 "수많은 고객 프로젝트를 통해 대부분의 문제는 데이터 품질에서 비롯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기술보다 사람이 우선돼야

다시 한국에 돌아오며 그는 문화와 환경의 차이를 실감했다. 조직이 작고 속도가 빠른 스타트업 특성상 다양한 팀과 긴밀히 소통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일하는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도 체감했다.

미국의 자유로운 피드백 문화와 한국의 조심스러운 분위기는 극명하게 달랐다. 김 PO는 "미국에서는 피드백을 주고받는 게 자연스러웠지만 한국에서는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며 "그래서 팀원들에게 먼저 '편하게 질문하고 의견을 주라'고 자주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통만큼 중요한 게 '사람에 대한 이해'라는 점도 다시 확인했다. 그래서 김 PO는 제품을 설계할 때 사람을 이해하는 일에도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함께 일하는 사람의 스타일과 동기를 먼저 파악해야 협업이 원활하다고 믿는다.

그는 "상대방의 업무 스타일과 동기를 알면 갈등 없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며 "협업은 결국 사람이 중심"이라 강조했다.

김 PO의 꿈은 AI와 교육을 결합한 에듀테크 분야 창업이다. 언젠가 이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품어왔다. 미국과 한국 양쪽을 경험한 배경은 글로벌 시장을 바라보는 데 강점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는 "AI는 여전히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분야"라며 "누구나 쉽게 배우고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기술을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지금도 매일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미국과 한국, 실리콘밸리 글로벌 대기업과 스타트업 사이에서 아직 완벽한 정답은 찾지 못했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해답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김 PO는 "정답을 찾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다"며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언젠가 그 정답에 닿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